明心寶鑑

繼善篇

1

景行錄1)曰 恩義 廣施하라 人生2)何處不相逢이랴 讐怨3)하라 路逢狹處 難回避니라

『경행록(景行錄)』에서 말하였다.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느 곳에 살든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마라. 길을 가다 좁은 곳에서 만나면 회피하기 어렵다."

1) 景行錄 : 中國 宋代에 만들어진 잭이라 하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2) 生 : 원래는 '낳다'는 뜻을 가진 동사이나, 여기서는 사람 혹은 동물을 가리키는 접미사로 쓰였다.
    EX) 人生不學이면 冥冥如夜行이니라 :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움이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라."
         不怕虎生三個口요 只恐人情兩樣心이니라 : 호랑이가 세 번 입을 벌리는 것이 두렵지 않고, 단지 사람의 두 마음이          두렵다. 하지만 이 문장은 "사람이 살다보면 어디에선가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3) 莫 : 금지사. "∼하지 말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과 유사한 의미의 말이다. 사람의 앞날이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지금 나보다 처지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영원한 모습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한 때 어려운 처지, 못한 환경에 처했던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훗날 국가와 민족, 인류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인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므로 항상 남을 나와 똑같이 여겨 은혜와 의리를 널리 배풀고, 스스로 남과 원수나 원한을 맺지 말라고 경계한 말이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사랑할 원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莊子曰 於我善者 我亦善之1)하고 於我惡者 我亦善之니라 我旣於人 無惡이면 人能於我 無惡哉인저

장자가 말하였다. "나에게 착하게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하게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함이 없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함이 없다."

 

1) 之 : 지시대명사. 첫 번째 '之'는 '於我善者'를 가리키고, 두 번째 '之'는 '於我惡者'를 가리킨다.

  앞에서도 밝혔듯이『명심보감』에서의 장자의 말은『장자』에는 나와 있지 않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했다. 인은 원래 동이족이 갖고 있던 성품이며 마음씨라고 한다. 동이족들은 원래 남과 나를 남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된 공동체로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이 인이다.
  현실에서 남과 나를 하나로 파악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다. 부모와 자녀는 육체적으로는 각각 독립된 존재이지만 유전적 내용과 본질적 측면에 있어서는 하나인 관계로 유지되어 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하나로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이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다. 이 마음이 계속 유지되면 형제간도 하나의 몸과 같은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이러한 마음을 더욱 확산시키게 되면 결국 모든 사람과 내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는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를 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서恕와 충忠이라고 했다. 서는 남과 내가 같은 마음을 말하는데, 남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결국 仁者란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남을 나와 한 몸과 같은 존재로 여겨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자의 모습을 현실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인 것이다. 부모님은 자식이 아무리 자기에게 서운하게 하더라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는다. 이러한 마음을 확충시키게 되면 언제나 솔선하여 남에게 善을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때 남도 나에게 악으로 갚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東嶽聖帝1)垂訓曰 一日行善이면 福雖2)未至 禍自遠矣3) 一日行惡이면 禍雖未至 福自遠矣 行善之人4)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라도 日有所增하고 行惡之人 如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라도 日有所虧5)니라

『동악성제수훈(東嶽聖帝垂訓)』에 말하였다. "하루 선한 일을 행하면 복은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화[재앙]는 저절로 멀어질 것이요, 하루 악한 일을 행하면 화는 비록 이르지 아니하나 복은 저절로 멀어질 것이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로 더해지는 것이 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 갈려 닳아 없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로 이지러짐이 있다."

1) 東嶽聖帝 : 道敎의 산신령, 혹은 中國 泰山의 산신령이라고 하는데, 자세하지는 않다.
2) 雖 : 비록∼하더라도(이라도). 양보절을 이끄는 부사이다.
3) 矣 : 종결사. 추측 또는 미래를 나타내거나, 약한 단정을 나타냄.
4) 如 : 마치∼과 같다.
5) 虧 : 이지러지다.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없어지다. 달 따위가 한쪽이 차지 않다. 주로 닳아서 없어지는 모습이나, 보름    달이 기울어질 때 조금씩 줄어드는 모습.

   사람의 선행을 장려하거나, 악행을 막으려 할 때 보상심리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거나 '나쁜 일을 하면 죄를 받는다'고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특히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하면 거기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보상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선행이란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일이지 꼭 보상이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니며, 악행 역시 죄나 벌을 피하기 위해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선행을 하면 복이 당장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거듭 선행을 함으로써 사람 자체가 선한 사람이 되므로 재앙이 저절로 멀어지게 될 것이며, 악행을 하게 되면, 점차 악에 물들어 사람 자체가 악한 사람이 되므로 자연 복은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또한 한 두 번의 선행과 악행으로 사람이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날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한 번 선행을 했지만 당장에 그 보상이 없다고 해서 선행을 그만 두어서는 안되고, 한 번의 작은 악행을 저지르고 요행이 남에게 지탄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악행을 당연시 여겨서도 안된다. 선행과 악행의 결과가 비록 한 두 번의 행위에 확연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차츰 불어나 나중에는 한 없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子曰 見善如不及하고 見不善如探湯하라

공자가 말하였다. "선함을 보거든 미치지 못할 것과 같이 하고, 선하지 않음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

  이 문장은 {論語}[季氏]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孔子曰 見善如不及하며 見不善如探湯을 吾見其人矣요 吾聞其語矣로라(孔子께서 말씀하셨다. "善을 보고는 미치지 못할 듯이 열심히 노력하며, 不善을 보고는 끓는 물을 만지는 것처럼 빨리 피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하는 사람도 보았고, 나는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공자는 모든 제자들이 학문을 완성하여 저절로 진리를 실천하는 단계에 이를 것을 바랬다. 그러나 학문을 완성하여 저절로 진리를 실천하는 단계란 평범한 공부를 통해서는 이룰 수 없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한 공부 중의 하나가 擇善固執 즉 善을 택하여 굳게 잡는 것이다. 이 말은 유학의 학문의 목표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인 공부 방법의 하나로 특히 개인의 내면적인 충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人慾의 사사로움 때문에 덕을 실천하기 어려운 경우많다. 그러므로 선을 선택해야만 선을 밝힐 수 있고, 그 선택해서 밝힌 선을 굳게 지켜야만 자신을 성실하게 할 수 있다.
※ 擇善固執에서 擇善이란 내재한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는 인식의 단계를 의미한다면 固執은 자각한 본성을 행동에 옮기는 실천의 단계를 의미한다. 또한 선을 선택하여 지키기 위해서는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하게 물으며(審問),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명확하게 분별하며(明辯), 독실하게 수행(篤行)해야 한다. 객관적인 지식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