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 子
梁惠王章句上
01-02-01
孟子ㅣ見梁惠王하신데 王ㅣ立於1)沼2)上3)이러니 顧鴻4)鴈麋5)鹿曰 賢者도 亦樂此乎잇가 |
맹자께서 양혜왕을 만나셨는데, 왕이 못가에 있다가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자도 또한 이것을 즐기십니까? |
1) 於 : 처소격
조사. '~에', '~에서', '~로', '~에(게)로' 등의 뜻으로 뒤에 장소나
방향을 나타내는 말이 오는데, 영어의 'form'이나
'to'의 의미를 모두 지닌다. |
양혜왕이 자기만 즐길 수 있는 정원을 꾸며놓고 거기에 기르는 기러기와 사슴들을 감상하다가 문득 맹자에게 질문한 것이다. 양혜왕의 생각에는 글이나 읽고 도덕이나 논하는 맹자와 같은 센님들은 이러한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현자도 이러한 것을 즐거워함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양혜왕의 오만 방자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
01-02-02
孟子ㅣ 對曰 賢者而後에 樂此니 不賢者는 雖有此나 不樂也니이다 詩1)云 經2)始靈臺하여 經之3)營4)之하시니 庶民攻5)之라 不日6)成之로다 經始勿亟7)하시나 庶民子8)來로다 王在靈囿하시니 麀鹿攸9)伏이로다 麀鹿濯濯10)이어늘 白鳥鶴鶴11)이로다 王在靈沼하시니 於12)牣13)魚躍이라하니 文王14)이 以民力으로 爲臺爲沼15)하시나 而民歡樂之하여 謂其16)臺曰靈臺라하고 謂其沼曰靈沼라하여 樂其有麋鹿魚鼈하니 古之人17)이 與民偕樂이라 故로 能樂也니이다 湯誓18)曰 時19)日20)은 害喪고 予及21)女로 偕亡이라하니 民欲與之偕亡이면 雖有臺池鳥獸나 豈能獨樂哉22)리잇고 |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현자인 뒤에야 이것을 즐길 수 있으니 현자가 아니라면 비록 이것이 있더라도 즐기지 못합니다.『시경』에 이르기를 "영대를 측량하기 시작하여 측량하고 재어보고 하자, 서민들이 와서 일하는지라 며칠 되지 않아서 완성되었도다. 측량하여 짓기 시작하자 서두루지 말게 하셨으나 서민들이 아들처럼 와서 도왔네. 왕이 영유에 계시니, 사슴들이 그 곳에 가만히 엎드려 있도다. 사슴들이 濯濯하거늘 백조는 鶴鶴하도다. 왕이 영소에 계시니 아! 못에 가득 물고기가 뛰논다."하였으니, 문왕이 백성들의 힘을 이용하여 臺를 만들고 沼를 만들었으나 백성들이 그것을 즐거워하여 그 臺를 일러 영대라 하고 그 沼를 일러 영소라 하여, 그가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좋아하였으니, 옛사람들은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즐겼기 때문에 즐길수 있었던 것입니다.『탕서』에 이르길 "이 해는 언제나 없어질까? 내 너와 더불어 함께 망하겠다."하였으니, 백성들이 그대와 더불어 함께 망하고자 한다면, 비록 대와 못과 새와 짐승이 있은들 어찌 홀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
1) 詩 : 『詩經』「大雅
文王之十 靈臺」周文王의 德을 찬양한 것임. |
양혜왕의 질문에 맹자가 참다운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므로써 양혜왕이 仁義의 정치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儒家에서
꿈꾸는 이상사회는 아무도 천하의 사물을 사사로이 차지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물건이 있더라도 자기 것으로 우기지 않으며,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져 누구나 자유 평등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이다. 이런 사회를 이끌며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유원지를 만들고, 별장을 만들어도 그것을 자기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반드시 남과 함께 즐기므로 그가 별장을 만드는
일에 시기하거나, 백안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여겨 더 좋아하고, 공사에 달려들어 한 가지 일이라도 더 거들려고 한다.
그러므로 賢者인 文王이 동산을 만들 때에도 문왕이 비록 백성들의 힘을
이용하였으나, 백성들은 도리어 그것을 더 좋아하며 자기의 일, 혹은
아버지의 일처럼 여기고 와서 도왔던 것이고, 또 아름다운 명칭을 더해주었는데,
이는 문왕이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의 즐거워함을
좋아하여 문왕 또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
01-03-01
梁惠王ㅣ 曰 寡人1)之2)於3)國也에 盡心焉4)耳矣로니 河5)內凶이어든 則移其民於河東하고 移其粟於河內하며 河東凶이어든 亦然하노니 察隣國之政한대 無如寡人之用心者로되 隣國之民이 不加少하며 寡人之民이 不加多는 何也잇고 |
양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거기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곳의 백성들을 하동지방으로 이주시켜주고, 그 곡식을 하내지방으로 옮겨가며,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거든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건대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과 같이 하는 자가 없는데에도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더 적어지지 않으며, 과인의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
1) 寡人 : 임금이
자신을 지칭할 때 쓰는 말. 寡德之人 즉 '덕이 적은 사람'이란 의미의
겸사(謙辭)이다. |
양혜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흉년이 들면 구휼미를 대 주고, 천재지변이 나면 이주정책을 쓰는 등 나름대로 마음을 다해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백성이 늘어나지 않음을 의아스럽게 생각해서 한 질문이다. |
01-03-02
孟子ㅣ對曰 王好戰하시니 請而戰喩하리이다 塡然1)鼓之2)하여 兵刃旣接이어든 棄甲3)曳兵4)而走하되 或百步而後止하며 或五十步而後止하여 以五十步로 笑百步면 則何如하니잇고 曰 不可하니 直5)不百步耳언정 是亦走也니이다 曰 王如6)知此시면 則無望民之7)多於隣國也하소서 |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왕께서 전쟁 좋아하시니, 청컨대 전쟁을 가지고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을 쳐서 병기와 칼날이 이미 맞부딪친 후에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며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백 걸음을 도망한 뒤에 멈추며 혹은 오십 걸음을 도망한 뒤에 멈추어서, 오십 걸음을 달아났다고 해서 백 걸음을 달아난 자를 비웃으면 어떻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안됩니다. 다만 백 걸음을 달아나지 않았을 뿐 이 또한 달아난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하였다. "왕께서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들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
1) 塡然 : 의성어.
북치는 소리. '둥둥'하는 소리. |
양혜왕은 나름대로 양민구휼정책과 복지정책을 잘 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혜왕의 정치는 전국시대 당시의 다른 제후들과 마찬가지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패도정치였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제후들의 정치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더구나 인의를 가장해서 패권을 차지하려는 정책이므로 양혜왕의 정치는 한낱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수준이므로 굳이 살던 고향을 버리고 양나라로 이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나라의 백성이 이웃보다 많아지지 않았던 것이고,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양나라의 백성보다 적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웃나라는 그 백성을 구휼하지 않는데, 양혜왕 자신은 작은 은혜라도 행하고 있으니 당연히 백서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혜왕의 지나친 바램이다. 백성을 옮기고 곡식을 옮김은 흉년든 정사에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왕의 도를 행하지 못하면서 다만 이것을 가지고 마음을 다했다고 한다면 잘못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를 "오십보 백보"에 비유하여 양혜왕에게 설명하고 다음으로 참다운 정치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01-03-03
不違農時면 穀不可勝1)食也며 數2)罟를 不入洿池면 漁鼈을 不可勝食也며 斧斤을 以時3)入山林이면 材木을 不可勝用也니 穀與漁鼈을 不可勝食하며 材木을 不可勝用이면 是는 使民養生4)喪死5)에 無憾也니 養生喪死에 無憾이 王道6)之始也니이다 |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놓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와 자귀를 때에 맞게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하여금 산 이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葬送함에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송함에 유감이 없는 것이 왕도의 시작입니다. |
1) 勝 : '이기다'.
음은 '승'. 먹는 것을 이긴다는 말은 곧 '다 먹을 수 있다'는 뜻이므로
勝食을 '이루 다 먹을 수 있다'고 해 석한 것임.
이와 마찬가지로 勝+동사의 문장이 될 때에는 '이루 다 ∼(동사)할 수
있다'고 해석함. |
왕도를 펴기위한 기초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왕도정치의
핵심은 위정자나 백성 모두가 도덕을 확립하여 백성들이 참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초적인 민생이
안정되어야 하며, 나라의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야 한다. |
01-03-04
五畝1)之宅에 樹之以桑이면 五十者可以2)衣帛矣며 鷄豚狗彘之畜3)을 無失其時면 七十者可以食肉矣며 百畝之田을 勿奪其時면 數口之家可以無飢矣며 謹庠序4)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면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리니 七十者衣帛食肉하며 黎民5)이 不飢不寒이요 然而不6)王者未之7)有也니이다 |
5畝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개와 돼지와 닭과 큰돼지의 가축을 기름에 새끼칠 때를 잃지 않게 하면 70세 된 자가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무의 토지에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다면 몇 식구의 집안이 굶주림이 없을 수 있으며,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제의 의리로써 거듭한다면, 머리가 반백이 된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을 것입니다. 7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젊은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게 하고서도 왕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
1) 畝 : 면적의
단위. 음은 '묘'. '四方 六尺을 一步라고 하고 百步를 一畝라고 한다.
오늘날의 단위로는 四方 六尺이 一坪이 므로 一畝는
100 坪이다. 一畝가 140평방미터라는 설도 있다. 周나라의 제도에 토지는
다 국유로 하되 900 畝를 한 단 위로 하고, 그것을
다시 과 같이 구획하여, 가장자리의 八百畝는 여덟집의 농민에게 각각
나누어 주어서 경작하게 하고, 거기서 수확되는 곡식에
대해서는 조세를 받지 않고 모두 농민이 가지게 하는 대신, 가운데 百畝를
공동으로 경작하게 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수확을
조세 대신으로 납부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제도를 井字처럼 밭을 구획한다고
하여 井田法 이라 하였다. |
이 문장은 가정을 단위로 한 경제의 운용방법과 가족경제의
안정을 통한 사회안정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
01-03-05
狗彘食人食而不知檢1)하며 塗2)有餓莩3)而不知發4)하고 人死則曰 非我也라 勢也라하나니 是何異於5)刺6)人而殺之曰 非我也라 兵也리오 王無罪歲하시면 斯天下之民이 至焉하리이다 |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다. 흉년 탓이다.'라고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다. 무기 탓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흉년에게 죄를 돌리는 것이 없으면 곧 천하의 백성들이 올 것입니다." |
1) 檢 : '단속하다'.
음은 '검'. |
이 문장은 맹자가 당시 상황에서의 양혜왕의 실책을 직접적으로 열거하여 그 잘못을 깨우쳐준 것이다. 양혜왕은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 주지 못하고, 민생을 안정시키지도 못하였으며, 또 개와 돼지로 하여금 사람이 먹을 것을 먹게 하였으니, 이는 왕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백성들이 굶주려 죽음에 이르는데에도,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할 줄 몰랐으니, 아무리 양혜왕이 흉년에 곡식을 옮겨 주고, 백성을 이주시켰다 하더라도 그 옮겨간 것은 다만 민간의 곡식일 뿐이며, 백성들의 터전을 바꾼것일 뿐이다. 그런데 마침내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음을 가지고 흉녕의 탓으로 돌리니, 이는 칼날이 사람을 죽인 것만 알고, 칼날을 잡은 자가 사람을 죽인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아지지 않음을 흉년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를 돌이켜서 더욱 왕도를 닦아 나아간다면, 천하의 백성이 올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비단 백성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질 뿐만이 아니라 왕도정치를 통한 천하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