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        子

梁惠王章句上

01-02-01

孟子見梁惠王하신데立於1)2)3)이러니 顧鴻4)鴈麋5)鹿曰 賢者 亦樂此乎잇가

맹자께서 양혜왕을 만나셨는데, 왕이 못가에 있다가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현자도 또한 이것을 즐기십니까?

1) 於 : 처소격 조사. '~에', '~에서', '~로', '~에(게)로' 등의 뜻으로 뒤에 장소나 방향을 나타내는 말이 오는데, 영어의     'form'이나 'to'의 의미를 모두 지닌다.
2) 沼 : '못' 또는 '늪'. 음은 '소'. 일반적으로 둥글게 생긴 못 따위를 '池'라 하고, 굽은 것을 '沼'라고 한다.
3) 上 : 주로 강이나, 바다, 연못 등 물의 가장 자리를 나타낼 때 '上'이라는 글자를 자주 쓰는데, 이 때는 '위'라고 해석하지     않고 '가'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4) 鴻 : 기러기 종류로서 기러기보다 큰 물새. 음은 '홍'
5) 麋 : 순록. 사슴과의 하나. 몸의 길이는 1.8미터, 어깨의 높이는 1미터 정도이며, 여름에는 어두운 갈색, 겨울에는 갈색    이고 여러 갈래로 된 큰 뿔이 있다. 가을철에 교미하여 7개월 만에 한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다리가 길고 억세어 마소    처럼 부리는데 고기와 젖은 식용하고 가죽은 의복, 천막, 구두 따위를 만드는 데 쓴다. 지의류를 먹고 가을철에 남방 삼    림 지대에 떼 지어 이동하며 북극 지방에 분포한다.

양혜왕이 자기만 즐길 수 있는 정원을 꾸며놓고 거기에 기르는 기러기와 사슴들을 감상하다가 문득 맹자에게 질문한 것이다. 양혜왕의 생각에는 글이나 읽고 도덕이나 논하는 맹자와 같은 센님들은 이러한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현자도 이러한 것을 즐거워함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양혜왕의 오만 방자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01-02-02

 

孟子 對曰 賢者而後 樂此 不賢者 雖有此 不樂也니이다1)云 經2)始靈臺하여 經之3)4)하시니 庶民攻5) 不日6)成之로다 經始勿7)하시나 庶民子8)로다 王在靈하시니 麀鹿攸9)이로다 麀鹿濯濯10)이어늘 白鳥鶴鶴11)이로다 王在靈沼하시니12)13)魚躍이라하니 文王14) 以民力으로 爲臺爲沼15)하시나 而民歡樂之하여 謂其16)臺曰靈臺라하고 謂其沼曰靈沼라하여 樂其有麋鹿魚鼈하니 古之人17) 與民偕樂이라 能樂也니이다 湯誓18)曰 時19)20) 害喪 予及21) 偕亡이라하니 民欲與之偕亡이면 雖有臺池鳥獸 豈能獨樂哉22)리잇고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현자인 뒤에야 이것을 즐길 수 있으니 현자가 아니라면 비록 이것이 있더라도 즐기지 못합니다.『시경』에 이르기를 "영대를 측량하기 시작하여 측량하고 재어보고 하자, 서민들이 와서 일하는지라 며칠 되지 않아서 완성되었도다. 측량하여 짓기 시작하자 서두루지 말게 하셨으나 서민들이 아들처럼 와서 도왔네. 왕이 영유에 계시니, 사슴들이 그 곳에 가만히 엎드려 있도다. 사슴들이 濯濯하거늘 백조는 鶴鶴하도다. 왕이 영소에 계시니 아! 못에 가득 물고기가 뛰논다."하였으니, 문왕이 백성들의 힘을 이용하여 臺를 만들고 沼를 만들었으나 백성들이 그것을 즐거워하여 그 臺를 일러 영대라 하고 그 沼를 일러 영소라 하여, 그가 사슴과 물고기와 자라를 소유함을 좋아하였으니, 옛사람들은 백성들과 더불어 함께 즐겼기 때문에 즐길수 있었던 것입니다.『탕서』에 이르길 "이 해는 언제나 없어질까? 내 너와 더불어 함께 망하겠다."하였으니, 백성들이 그대와 더불어 함께 망하고자 한다면, 비록 대와 못과 새와 짐승이 있은들 어찌 홀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1) 詩 : 『詩經』「大雅 文王之十 靈臺」周文王의 德을 찬양한 것임.
2) 經 : 측량하다. 음은 '경'.
3) 之 : 지시대명사.
4) 營 : '짓다', '만들다'. 집 등을 짓는 기초작업. 음은 '영'.
5) 功 : '일', '작업'. 힘써서 일하는 것.
6) 日 : '날', '몇날', '며칠'. 따라서 不日은 '며칠 되지 않다'라는 뜻이되는데, 朱子는 不日을 '하루가 지나지 않다'로 해석     했다.
7) 亟 : '급하다'. 음은 '극'. '자주'라는 뜻으로 쓰일 경우에는 '기'라고 발음한다.
8) 子 : 원래는 '아들', '자식' 등의 명사이지만 여기서는 뒤의 동사 '來'를 수식하는 부사어로 쓰였다. 따라서 의미는 '자식     처럼', '자식같이', '아들처럼', '아들같이'의 뜻이 된다.
9) 攸 : 所와 같은 의미의 불완전 명사. 따라서 '것', '곳'의 의미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장소를 나타낸다. 음은 '유'.
10) 濯濯 : 살찌고 윤택한 모양. 짐승들이 반지르르하게 살찐 모양. 음은 '탁탁'.
11) 鶴鶴 : 희고 깨끗한 모양.
12) 於 : '아아!'. 감탄사. 음은 '오'.
13) 牣 : '가득하다.' 음은 '인'.
14) 문왕(文王/?∼?) : 주(周)나라의 기초를 닦은 임금. 이름 창(昌). 계(季)의 아들, 무왕의 아버지, 어머니는 은(殷)나라에     서 온 태임(太任). 서백(西伯)이라고도 한다. 은나라에서 크게 덕을 베풀고 강국으로서 이름을 떨친 계(季)의 업을 계승     하여, 점차 인근 적국들을 격파하였다. 渭水를 따라 동진하여 지금의 西安 남서부 豊邑, 즉 호경(鎬京)에 도읍을 정하     였다.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영토확장을 위한 정벌에 여념이 없는 틈을 타, 인근 제후들의 세력을 규합하여 黃河를 따     라 동으로 내려가, 華北평원으로 진출하였으며, 그 도하점(渡河點) 맹진(孟津)을 제압하고, 은나라를 공격할 태세를 정     비하였다. 만년에는 현상(賢相) 여상(呂尙:太公望)의 도움을 받아 덕치(德治)에 힘썼다. 뒤에 은나라로부터 서방 제후     의 패자(覇者)로서 서백의 칭호를 사용하도록 허락받았다. 은나라와는 화평주의적 태도를 취하였으며, 우(虞)·예(芮)     등 두 나라의 분쟁을 중재하여 제후들의 신뢰를 얻어 천하 제후의 2/3가 그를 따랐다. 죽은 뒤 그의 아들 무왕이 군사     를 일으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창건하였으며, 그에게 문왕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뒤에 유가(儒家)로부     터 이상적인 성천자(聖天子)로서 숭앙을 받았으며, 문왕과 무왕의 덕을 기리는 다수의 시가 『시경(詩經)』에 수록되     어 있다.
15) 以A爲B구문. 'A로써 B를 삼다. A를 가지고 B를 하다.' 이 문장은 원래 "以民力爲臺, 以民力爲沼"의 문장으로 "백성들의     힘을 가지고 臺를 만들고, 백성들의 힘을 가지고 沼를 만든다"는 뜻인데, 以民力이 중복되어 나오므로 뒤의 以民力은     생략된 것임.
16) 其 : '그'. 여기서는 文王을 지칭한다.
17) 古之人 : 文王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여기서 文王이라 하지 않고 古之人이라 한 것은 맹자가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이     딱히 文王에게 국한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옛 聖王들의 정치를 말함에있어 문왕을 한 예로 들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여기서 古之人이라고 한 것은 문왕 뿐만 아니라 옛 聖王들을 두루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8) 湯誓 :『書經』商書의 편명. 商(뒤에 殷으로 고침)의 湯왕이 당시의 폭군인 夏의 걸(桀)왕을 칠 때의 檄文.
19) 時 : 是이다.
20) 日 : 해, 태양. 여기서는 桀을 지칭한다. 桀은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천하를 소유함은 하늘에 태양이 있는 것과      같으니, 태양이 없어져야 내 그제서야 망한다."하였는데, 백성들이 그의 학성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을 인하여 지목해서 桀을 日에 비유한 것이다.
21) 害 : 『書經』원문에는 '曷'로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도 '갈'로 발음하고 '언제'라는 뜻으로 해석 한다.
22) 及 : 與과 같음. '∼와', '∼및'. ex) 'A 及 B'. 'A와 B', 혹은 'A 및 B'.
23) 女 : 너(You). 汝와 통용.
24) 豈∼哉 : '어찌 ∼하겠는가?'

   양혜왕의 질문에 맹자가 참다운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므로써 양혜왕이 仁義의 정치를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儒家에서 꿈꾸는 이상사회는 아무도 천하의 사물을 사사로이 차지하지 않고, 땅에 떨어진 물건이 있더라도 자기 것으로 우기지 않으며,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추어져 누구나 자유 평등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이다. 이런 사회를 이끌며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유원지를 만들고, 별장을 만들어도 그것을 자기 개인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반드시 남과 함께 즐기므로 그가 별장을 만드는 일에 시기하거나, 백안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들 자신의 일처럼 여겨 더 좋아하고, 공사에 달려들어 한 가지 일이라도 더 거들려고 한다. 그러므로 賢者인 文王이 동산을 만들 때에도 문왕이 비록 백성들의 힘을 이용하였으나, 백성들은 도리어 그것을 더 좋아하며 자기의 일, 혹은 아버지의 일처럼 여기고 와서 도왔던 것이고, 또 아름다운 명칭을 더해주었는데, 이는 문왕이 백성들을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의 즐거워함을 좋아하여 문왕 또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힘을 이용하고, 백성들의 세금을 써서 동산을 지어놓고 혼자서 즐기기만 하고, 민생고에 대해서 나몰라라 하거나, 오히려 학정을 한다면 백성들은 원망할 것이고 틈만 있으면 때려 부수고 싶을 것이다. 그럴수록 학정을 피는 위정자는 더욱 삼엄한 공안정치를 펴 백성들의 삶을 감시감독 할 것이며, 자신이 지은 동산의 경비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위정자에대한 백성들의 원망은 늘어갈 것이며, 불신또한 깊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속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게 되면 결국 백성들의 마음 속에서는 "너죽고 나죽자", "함께 죽자"는 생각 까지 일게 될 것이다. 맹자가 인용하고 있는 「湯誓」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걸왕은(桀王)중국 고대 하왕조(夏王朝) 최후의 왕으로서 은(殷)왕조 최후의 왕인 주(紂)와 함께 포악한 임금의 상징으로서, 걸주(桀紂)라고도 하며, 흔히 이상적 천자로 추앙받는 요순(堯舜)과 대비된다. 그는 웅장한 궁전을 건조하여 천하의 희귀한 보화와 미녀를 모았으며, 궁전 뒤뜰에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 배를 띄워 즐겼고, 장야궁(長夜宮)을 짓고 거기서 남녀 합환의 유흥에 빠졌다고 전한다. 이와 같이 걸왕은 부도덕하였고, 현신(賢臣) 관용봉(關龍逢)과 이윤(伊尹)의 간언을 듣지 않았으며, 백성을 억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덕군자로 알려졌던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을 하대(夏臺)에서 체포하는 등 폭정을 자행하였다. 걸왕은 일찍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천하를 소유함은 하늘에 태양이 있는 것과 같으니, 태양이 없어져야 내 그제서야 망한다."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그의 학정을 원망하였기 때문에 그가 스스로 말한 것을 인하여 지목하기를 "이 해가 언제나 없어지겠는가? 만일 없어진다면 내 차라리 그와 더불어 함께 없어지겠다." 하였으니, 이것은 그가 망하기를 바람이 심한 것이다. 맹자는 이것을 인용하여, 양혜왕에게 군주가 홀로 즐기고 백성을 구휼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를 원망하여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없고, 참된 즐거움이란 백성들과 함께하며 백성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일께워준 것이다.

01-03-01

梁惠王 曰 寡人1)2)3)國也 盡心焉4)耳矣로니5)內凶이어든 則移其民於河東하고 移其粟於河內하며 河東凶이어든 亦然하노니 察隣國之政한대 無如寡人之用心者로되 隣國之民 不加少하며 寡人之民 不加多 何也잇고

양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거기에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곳의 백성들을 하동지방으로 이주시켜주고, 그 곡식을 하내지방으로 옮겨가며, 하동 지방에 흉년이 들거든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건대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과 같이 하는 자가 없는데에도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더 적어지지 않으며, 과인의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1) 寡人 : 임금이 자신을 지칭할 때 쓰는 말. 寡德之人 즉 '덕이 적은 사람'이란 의미의 겸사(謙辭)이다.
2) 之 : 주격조사.
3) 於 : 이 문장 속에서의 於의 용법은 장소나 방향을 나타내는 처소격 조사가 아니면 뒤의 國을 목적어로 만들어주는 목적     격 조사로 쓰인 것이다. 그런대 이러한 두 경우에는 반드시 於 앞에 동사가 와야 하는데, 여기서는 생략된 것이며, 생략     된 동사는 의미상 治라고 볼 수 있다.
4) 焉 : 종결어미로 많이 쓰이는데, 단순히 문장이 끝나는 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於之', 혹은 '之於'의 줄임말     인 경우가 만다. 따라서 해석도 "거기에"라고 번역해야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장에서 '거기'에 해당되는 부분은 '나     라를 다스리는데'가 된다.
5) 河 : 黃河. 황하는 매우 심하게 굽이치면서 흐르므로 河內라함은 황하의 물길이 원을 그리면서 꼬부라져 흐르는 황하의     안쪽을 말하는 것이니, 전국시대 위나라의 입장에서보면 하남성(河南省)의 황하이북과 山西省의 동남부 일대이고, 河     東은 황하가 남북으로 흐르는 부분의 동쪽을 말하는 것이니, 山西省의 남부 일대에 해당한다.

 

양혜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흉년이 들면 구휼미를 대 주고, 천재지변이 나면 이주정책을 쓰는 등 나름대로 마음을 다해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백성이 늘어나지 않음을 의아스럽게 생각해서 한 질문이다.

01-03-02

孟子對曰 王好戰하시니 請而戰喩하리이다 塡然1)鼓之2)하여 兵刃旣接이어든 棄甲3)曳兵4)而走하되 或百步而後止하며 或五十步而後止하여 以五十步 笑百步 則何如하니잇고 不可하니5)不百步耳언정 是亦走也니이다 曰 王如6)知此시면 則無望民之7)多於隣國也하소서

맹자께서 대답하였다. "왕께서 전쟁 좋아하시니, 청컨대 전쟁을 가지고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을 쳐서 병기와 칼날이 이미 맞부딪친 후에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며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백 걸음을 도망한 뒤에 멈추며 혹은 오십 걸음을 도망한 뒤에 멈추어서, 오십 걸음을 달아났다고 해서 백 걸음을 달아난 자를 비웃으면 어떻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안됩니다. 다만 백 걸음을 달아나지 않았을 뿐 이 또한 달아난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하였다. "왕께서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들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1) 塡然 : 의성어. 북치는 소리. '둥둥'하는 소리.
2) 之 : 앞의 글자를 동사로 만들어주는 구실을 한다. 따라서 鼓는 여기서 명사로 쓰인 것이 아니라, '북을 치다'라는 동사     로 쓰였다.
3) 甲 : 갑옷.
4) 兵 : 병기, 무기.
5) 直 : 다만.
6) 如 : 만일, 만약.
7) 之 : 주격조사. '民多於隣國'이 한 문장에서 독립된 문장으로 스이지 못하고 望의 목적어 역할을 하게되므로 주어와 서     술어 사이에 주격조사 之가 놓이게된 것이다.

  양혜왕은 나름대로 양민구휼정책과 복지정책을 잘 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혜왕의 정치는 전국시대 당시의 다른 제후들과 마찬가지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패도정치였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제후들의 정치와 별다른 차이가 없고, 더구나 인의를 가장해서 패권을 차지하려는 정책이므로 양혜왕의 정치는 한낱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수준이므로 굳이 살던 고향을 버리고 양나라로 이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나라의 백성이 이웃보다 많아지지 않았던 것이고,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양나라의 백성보다 적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웃나라는 그 백성을 구휼하지 않는데, 양혜왕 자신은 작은 은혜라도 행하고 있으니 당연히 백서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은 혜왕의 지나친 바램이다. 백성을 옮기고 곡식을 옮김은 흉년든 정사에 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왕의 도를 행하지 못하면서 다만 이것을 가지고 마음을 다했다고 한다면 잘못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를 "오십보 백보"에 비유하여 양혜왕에게 설명하고 다음으로 참다운 정치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01-03-03

不違農時 穀不可勝1)食也2) 不入洿 漁鼈 不可勝食也 斧斤 以時3)入山林이면 材木 不可勝用也 穀與漁鼈 不可勝食하며 材木 不可勝用이면 使民養生4)喪死5) 無憾也 養生喪死 無憾 王道6)之始也니이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을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연못에 놓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와 자귀를 때에 맞게 산림에 들어가게 하면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을 것입니다. 곡식과 물고기와 자라를 이루 다 먹을 수 없으며, 재목을 이루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으로하여금 산 이를 봉양하고 죽은 이를 葬送함에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송함에 유감이 없는 것이 왕도의 시작입니다.

1) 勝 : '이기다'. 음은 '승'. 먹는 것을 이긴다는 말은 곧 '다 먹을 수 있다'는 뜻이므로 勝食을 '이루 다 먹을 수 있다'고 해    석한 것임. 이와 마찬가지로 勝+동사의 문장이 될 때에는 '이루 다 ∼(동사)할 수 있다'고 해석함.
2) 數 : '빽빽하다', '촘촘하다'의 뜻으로 음은 '촉'. 이 글자는 이 외에도 두 가지 음이 더 있는데, '세다'라는 의미로 읽을    때의 '수'와 '자주'라는 의미로 읽을 때의 '삭'이 그것이다.
3) 時 : 때에 맞게. 알맞은 때.
4) 生 : 살아있는 사람.
5) 死 : 죽은 사람.
6) 王道 : 맹자가 추구하는 이상정치. 인격적으로 완벽한 성인이 되어 백성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 인위적이고 물리적    이며 제도적인 강제력이 없이도 조화롭고 안락한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정치방법.

  왕도를 펴기위한 기초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왕도정치의 핵심은 위정자나 백성 모두가 도덕을 확립하여 백성들이 참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초적인 민생이 안정되어야 하며, 나라의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야 한다.
  農時는 봄에 밭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수확하는 때를 이르니, 나라에서 백성들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시도 때도 없이 백성을 부역에 종하하게 하지 말고 파종기나 수확기 등 농번기를 피해서 이 때를 놓치지 않게 하고 생업과 기반 활동에 지장이 없게 해서 당시로서는 국가의 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농업의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옛날에는 그물 눈의 크기가 네 치가 되도록 만들어 치어들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여 어종이 고갈되지 않고 계속 물고기가 자라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고기가 한 자에 차지 못하면 시장에 팔 수 없고, 사람이 먹을 수 없게 하였다. 그리고 山林과 천택(川澤)을 백성과 함께 이용하되 엄중히 금지함이 있어서 초목의 잎이 떨어진 뒤에야 자귀와 도끼를 가지고 산림에 들어가게 하였다. 이것은 모두 정치하는 초기에 왕제가 아직 미비하였으므로 우선 천지자연의 이점에 따라 절제하고 애양(愛養)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재용이 풍족해져서 기본적인 의 식 주에 대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음식과 궁실은 산 이를 봉양하는 것이요, 제사와 관곽은 죽은 이를 장송하는 것이니, 모두 백성들에게 시급한 바여서 없으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모두 이것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왕도를 행할 수 있는 근본이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王道는 민심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것을 가지고 왕도의 시작을 삼은 것이다.

01-03-04

 

五畝1)之宅 樹之以桑이면 五十者可以2)衣帛矣 鷄豚狗彘之畜3) 無失其時 七十者可以食肉矣 百畝之田 勿奪其時 數口之家可以無飢矣 謹庠序4)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 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리니 七十者衣帛食肉하며 黎民5) 不飢不寒이요 然而不6)王者未之7)有也니이다

5畝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개와 돼지와 닭과 큰돼지의 가축을 기름에 새끼칠 때를 잃지 않게 하면 70세 된 자가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무의 토지에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다면 몇 식구의 집안이 굶주림이 없을 수 있으며,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제의 의리로써 거듭한다면, 머리가 반백이 된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이지 않을 것입니다. 70세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젊은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게 하고서도 왕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1) 畝 : 면적의 단위. 음은 '묘'. '四方 六尺을 一步라고 하고 百步를 一畝라고 한다. 오늘날의 단위로는 四方 六尺이 一坪이    므로 一畝는 100 坪이다. 一畝가 140평방미터라는 설도 있다. 周나라의 제도에 토지는 다 국유로 하되 900 畝를 한 단    위로 하고, 그것을 다시 과 같이 구획하여, 가장자리의 八百畝는 여덟집의 농민에게 각각 나누어 주어서 경작하게 하고,    거기서 수확되는 곡식에 대해서는 조세를 받지 않고 모두 농민이 가지게 하는 대신, 가운데 百畝를 공동으로 경작하게    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수확을 조세 대신으로 납부하게 하였는데, 이러한 제도를 井字처럼 밭을 구획한다고 하여 井田法    이라 하였다.
2) 以 : 전치사. 전치사 以의 목적어는 "五畝之宅樹之以桑"인데, 이미 앞에서 한 번 나왔고, 또 목적어가 길기 때문에 여기    에서 다시 쓰면 언어사용의 원칙상 비 경제적이다. 따라서 원래 해석은 "그렇게 함(五畝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르 심    음)으로써"이지만 생략하는 것이 경제적이며, 문맥상으로도 부드럽다.
3) 畜 : '기르다'. 음은 '휵'. 명사일 때는 '가축'이란 뜻으로서 음이 '축'이지만 동사일 때는 '기르다'는 뜻으로서 음이 휵이    된다.
4) 庠序 : 옛날 서민의 교육을 담당하던 학교. 殷代에는 序라고 하였고, 周代에는 庠이라 하였다.
5) 黎民 : 黎는 검다는 뜻이다. 黎民은 '머리가 검은 백성' 이므로 글자의 의미대로만 해석하면 '젊은 백성'의 의미이겠지    만, 보통은 머리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는 '일반 백성'을 의미한다.
6) 不王者 : 王은 원래 명사이지만, 不은 동사나 형용사를 부정한다. 따라서 王은 동사로 해석해서, '왕노릇하다'고 해석해    야 한다. 명사를 부정하는 역할은 주로 非가 한다.
7) 之 : "부정사+타동사+목적어"로 되어있는 문장의 경우 타동사와 목적어가 도치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문장 역시    '未有之也'로 놓고 해석하면 간편하다.

  이 문장은 가정을 단위로 한 경제의 운용방법과 가족경제의 안정을 통한 사회안정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백성의 경제가 침체되고, 민생이 안정되지 않으면 예의도덕을 다스릴 겨를이 없고, 또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짐승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백성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민생을 안정시켜 기초생활의 문제를 제거하며, 인의 도덕과 효제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이웃간에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어 사회의 양속이 확산되어 범 국가적으로 행해진다면 이는 왕도의 완성인 것이다.
  다만 당시의 중국사람들은 50세가 되면 몸이 쇠약해지기 때문에 비단옷을 입지 않으면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70세가 되면 몸이 더욱 쇠약해지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었다. 그러므로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음에 50세, 70세 만을 말한 것은 重한 것을 들어서 輕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도 역시 비록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을 수는 없으나 또한 굶주림과 추위에는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
  가축을 기름에 시기를 잃지 않는다는 말은 번식기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며, 百畝의 받에 그 때를 빼앗지 않는다는 말은 농번기에 부역이나 각종 토목공사로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함이 없이, 생업에 충실하게 한다는 말이다.

01-03-05

狗彘食人食而不知檢1)하며 塗2)有餓莩3)而不知發4)하고 人死則曰 非我也 勢也라하나니 是何異於5)6)人而殺之曰 非我也 兵也리오 王無罪歲하시면 斯天下之民 至焉하리이다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 모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 '내 탓이 아니다. 흉년 탓이다.'라고 하니, 이는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다. 무기 탓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께서 흉년에게 죄를 돌리는 것이 없으면 곧 천하의 백성들이 올 것입니다."

1) 檢 : '단속하다'. 음은 '검'.
2) 塗 : 途와 통용. 음은 '도'.
3) 莩 : '굶어죽은 시체'. 음은 '표'.
4) 發 : 열다. 여기에서는 '창고를 열다'라는 의미로 쓰였음.
5) 於 : 비교격 조사.
6) 刺 : '찌르다'. 음은 '자', 또는 '척'. 주로 바늘이나 송곳같은 것으로 찌르는 경우에 음을 '자'라 하고, 칼이나 창 등으로    찌르거나 베는 경우에 음을 '척'이라 한다.

  이 문장은 맹자가 당시 상황에서의 양혜왕의 실책을 직접적으로 열거하여 그 잘못을 깨우쳐준 것이다. 양혜왕은 백성의 생업을 제정해 주지 못하고, 민생을 안정시키지도 못하였으며, 또 개와 돼지로 하여금 사람이 먹을 것을 먹게 하였으니, 이는 왕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백성들이 굶주려 죽음에 이르는데에도,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할 줄 몰랐으니, 아무리 양혜왕이 흉년에 곡식을 옮겨 주고, 백성을 이주시켰다 하더라도 그 옮겨간 것은 다만 민간의 곡식일 뿐이며, 백성들의 터전을 바꾼것일 뿐이다. 그런데 마침내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 않음을 가지고 흉녕의 탓으로 돌리니, 이는 칼날이 사람을 죽인 것만 알고, 칼날을 잡은 자가 사람을 죽인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아지지 않음을 흉년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스스로를 돌이켜서 더욱 왕도를 닦아 나아간다면, 천하의 백성이 올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비단 백성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질 뿐만이 아니라 왕도정치를 통한 천하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