擊蒙要訣

革舊習章 第二

 

2-1

人雖有志於學이나 而不能勇往直前하여 以有所成就者 舊習 有以1) 沮敗之也 舊習之目 條列如左하노니 若非勵志痛絶이면 則終無爲學之地矣리라

사람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었다 하더라도 용감하게 곧바로 전진하여 <학문을> 성취하지 못하는 까닭은 구습이 <학문하겠다는 결심을> 가로막고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구습에 해당하는 항목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으니, 만약 뜻을 더욱 굳게 세워 뼈아프게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을 할 터전이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1) 以 : 전치사. 여기에서는 전치사 以의 목적어는 생략되었다. 전치사 以의 목적어에 해당되는 것이 ‘everything’,
         ‘everyone’, ‘anything’, ‘anyone’에 대당되는 경우에는 생략이 가능하다.

 유학(儒學)에 있어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배서서 성인이 되는데 있다.(學而成聖) 따라서 배움의 내용 역시 현대의 학문처럼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나 data를 습득한다던가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공식을 암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면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공부를 해야할 것인가?

聖人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든 행동양식을 표현한 것이 禮이다. 聖人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禮에 속하며, 나아가서는 관혼상제 등에 관한 모든 의식과 절차, 사회의 모든 제도와 질서를 준수하는 聖人의 행동양식이 모두 禮에 속한다. 그러므로 유학에서 말하는 學의 대상은 우선 禮로 나타난다. 禮를 배워서 실천하는 것이 學의 일차적인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禮는 聖人의 일생 동안에 나타난 모든 행동양식이기 때문에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며, 禮는 모든 구체적인 행동규범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스러운 행동을 속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禮를 모두 지키며 사는 사람이나 지키지 않고 사는 사람이나 죽고나면 다 같이 한 줌의 흙으로 변하므로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속박된 삶을 영위하면서까지 이 禮를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런 점들이 처음 학문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쉽게 실천에 옮기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禮가 갖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실천력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과거부터 깊이 배어온 구습을 타파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구습에 얽메어 있거나 안주하게 되면 사람은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구습에 얽메어 있게 되면 학문을 하겠다던 결심마저 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구태에 안주하게 된다. 그러면 구습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우선은 발상의 전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즉 禮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단순한 행위규범이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한 결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행동양식임을 자각하고서, 禮를 통하여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인식하여 실천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禮를 일일이 배워서 실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영위한 결과 나타나는 모든 행동양식이 저절로 禮가 되는 것이며, 구습은 자연 타파되어지는 것이다.

2-2

 

其一 惰其心志하고 放其儀形하여 只思暇逸하여 深厭拘束이요
其二 常思動作하여 不能守靜하고 紛紜出入하여 打話1)度日이요
其三 喜同惡2)하여 汨於流俗하여 稍欲修飭이나 恐乖於3)이요
其四 好以文辭 取譽於時하여 剽竊經傳하여 以飾浮藻4)
其五 工於筆札하고 業於5)琴酒하여 優游卒歲하여 自謂淸致
其六 好聚閒人하여 圍棋局戲하여 飽食終日하여 只資爭競이요
其七 歆羨富貴하고 厭薄貧賤하여 惡衣惡食 深以爲恥
其八 嗜慾無節하여 不能斷制하여 貨利聲色 其味如蔗니라

첫째는, 자신의 심지(心志)를 게을리 하고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 단지 한가하고 편안하기만을 생각하여 구속당하기를 매우 싫어하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동작할 것을 생각하여 고용함을 지키지 못하고, 어지럽게 드나들면서 말만 하면서 세월만 보내는 것이요.
셋째는, <여러 사람들과 의견이> 같은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싫어하여 세속에 빠져 조금 행실을 닦고 삼가려 하나 남들과 괴리될까 두려워하는 것이요.
넷째는, 문장으로 당시 세상에서 이름나기를 좋아하여, 경전의 내용을 표절해서 화려하기만한 문장을 꾸미는 것이요.
다섯째는, 글짓는 일에만 힘을 기울이고, 거문고 타기와 술 마시는 것을 업으로 삼아 한가히 놀면서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는 깨끗한 운치(韻致)라고 여기는 것이요.
여섯째는, 한가한 사람을 모아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서 배불리 먹고 하루를 마쳐 다만 남과 다투는 데만 힘을 보태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귀를 부러워하고,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여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 먹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요.
여덟째는, 즐겨하고 좋아하는 욕심을 절제함이 없어 끊어 억제하지 못해서 재리와 음악과 여색에 빠져 그 맛을 사탕처럼 달게 여기는 것이다.

1) 打話 : 말하다. 이야기하다.
2) 惡 : 싫어하다. 미워하다. 음은 ‘오’.
3) 於 : 비교격 조사.   ex) 人之所以異禽獸者, 幾希. : 사람이 짐승 다른 것은 거의 드물다.
4) 浮藻 : 물에 떠 있는 마름. 여기에서는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문장을 의미한다.
5) 於 : 타동사의 뒤에 있으면서 뒤에 오는 낱말을 타동사의 직접 목적어로 만들어주는 구실을 한다.
           ex) 三年無改父之道, 可謂孝矣. : 3 년 동안 아버지의 도를 고침이 없어야 효라 이를 수 있다. (이 문장에서와 같          이 타동사 改와 父之道의 사이에 놓여 父之道를 改의 직접목적어로 만들어주는 구실을 한다.)

 

   구습의 목록에 대해 낱낱이 열거하고 있다.
학문이란 개을러서는 하기 힘들다. 특히 성현의 예법을 익히고 몸에 배게한다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한가하고 편안한 것만을 좇으며, 남에게 구속당하기를 싫어한다면 학문에 진전이 있을 수 없다. 여기에서의 구속이란 다른 물리력에 의해 신체가 구속된다던가, 자신의 자유를 속박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거지를 예법에 맞게 하여 스스로를 방만하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현의 학문이란 곧 군자의 학문을 의미한다. 그런데 행동거지가 군자답지 못하고 경솔하며, 분수를 지키고 안정되지 아니하여 항상 정서불안증세가 있는 사람처럼 분주하게 동작하는 것 역시 학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문 역시 좋은 습관이 필요하다. 쓸데없이 지나치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역시 학문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버려야할 구습이다. 또한 군자는 남을 자기처럼 여기기 때문에 남과 갈등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지만 현실적으로는 각자에게 다르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남과 똑같이 행동하지 아니한다. 하지만 소인은 이익을 추종하기 때문에 이익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행동을 같이 하지만 늘 이익을 다툼으로써 남과 갈등하여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남과 같기만 하다면 자신은 사회적 존재의 가치가 없을 수 있다. 내가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과 다를 것이 조금도 없는 존재라면 사회적으로 나는 없어도 된다. 나의 일을 대신할 사람들은 많이 있을 테니까. 남과 다르기를 두려워한다던가, 남과 같은 것만을 좋아하고 추구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개성, 사회적으로 내가 아니면 안되는 나의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학자가 경계해야하는 것 중의 하나는 명예를 좇는 일이다. 학문을 넉넉히 하여 여유가 있게되면 명예는 저절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학문이 넉넉하지도 않으면서 명예만을 추구하면 학문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경전에 있는 성현의 말씀을 마치 자기의 말처럼 표절하여 자신의 학식을 과시하고자하나 이는 성현에게 죄를 짓는 일일 뿐 자신의 학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유학의 궁극적 목표가 성인이 되는데 있는데, 성현의 말씀을 마치 자신의 말처럼 도둑질한다던가, 성현의 말을 표절하여 쓸데없이 화려한 문장을 꾸미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결고 학문의 목표를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학문을 하면서 취미생활이 없을 순 없다. 건전한 취미생활은 오히려 학문을 함에 있어 활력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취미가 아닌 玩物喪志가 되어서는 안된다. 취미생활을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에서 끝이 나야지 그것이 학문을 방해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면 학문에 크게 해가될 뿐인 것이다. 남의 富貴를 부러워한다는 것은 남과 경쟁하는 육체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남의 부귀를 시기하고 자신의 가난을 참지 못하게 되면 남보다 가난하거나 빈천함을 견디지 못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부귀하게 되어도 ‘나의 돈을 훔쳐가지 않을까’ ‘내 지위를 누가 뺏으려 하지 않을까’ 늘 걱정함으로써 그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한다. 물론 본마음에 따라서 산 결과 저절로 얻어진 富貴는 좋은 것이지만, 육체적 욕구를 충족할 목적으로 얻은 富貴는 의미가 없다. 또한 몸에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 온 나의 삶은, 몸이 없어지는 순간 그 내용도 없어지는 허무한 것이므로, 이를 자각하고 참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학문이다. 그러므로 학문을 하면서도 아직 가나하거나 천한 것을 싫어하기만 하고,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것은 형식적으로만 학문을 하는 것이지 참다운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과는 더불어 학문을 논할 것이 없다.

2-3

習之害心者大槪如斯하니 其餘 難以悉擧 此習 使1)人志不堅固2)하고 行不篤實하여 今日所3) 明日難改하고 朝悔其行이라가 暮已復然하나니 必須大奮勇猛之志하여 如將4)一刀하여 快斷根株하고 淨洗心地하여 無毫髮餘脈하며 而時時每加猛省之功하여 使此心無一點舊染之汚然後 可以論進學之工夫矣리라

습관 중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방해되는 것이 대개 이와 같으니, 그 나머지는 이루 다 들기 어렵다. 이러한 습관이 사람으로 하여금 뜻을 견고하지 지키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독실하지 실천하지 못하게 하여, 오늘 저지른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쳤다가 저녁에는 이미 다시 그렇게 하나니,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분발해서 마치 칼을 가지고 단칼에 뿌리를 깨끗이 끊어버리듯이 하고,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어 털끝만치라도 남은 맥이 없게 하며, 때때로 매양 크게 반성하는 공부를 더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한 점이라도 옛날에 물든 더러움이 없게 한 뒤에야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1) 使 : 사역동사. ∼로 하여금 ∼하도록 하다. ∼에게 ∼하게 하다.
           ex) 聖人之敎, 使人不失其本心. : 성인의 가르침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심을 잃지 않게 한다.
              使我, 常必灑掃. : 나로 하여금 항상 반드시 물 뿌리고 청소하게 한다.
2) 志不堅固 : 堅固가 타동사이고 志는 목적어이므로 원래 어순은 ‘不堅固志’여야 하는데, 부정문일 경우에는 타동사와          목적어가 도치되는 경우가 많다.
3) 將 : 장차. 앞으로. 음은 ‘장’. 그런데 여기에서의 將의 쓰임은 ‘以’의 쓰임새와 유사하다. 따라서 ‘∼을 가지고’, ‘∼으          로’로 해석한다.
           ex) 富貴, 如將智力求, 仲尼, 年少合封侯.
              부귀를 만약 지혜와
힘으로 구할 수 있다면, 중니(仲尼 : 孔子)도 젊은 나이에 제후에 봉해졌을 것이다.
                 將狡譎爲生計, 恰似朝開暮落花 .
                 만약 교활함과 속임수를 가지고 생계를 삼는다면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과 흡사하다.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습을 단칼에 베어버리듯이 해야 함을 말하였다. 위에서 열거한 내용은 학문에 방해가 되는 대강을 밝힌 것이지 전부가 아니다. 이 외에도 구습에 해당되는 것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자기도 모르게 젖어있는 생활 습관 중에도 학문에 방해가 되는 구습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열거한 내용에 해당되는 구습을 다 제거했다 하더라도 막상 공부에 임하였을 때 자기도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생활 습관 때문에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항상 반성하는 자세를 가지고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습관 가운데 조금이라도 공부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다면 단칼에 뿌리를 깨끗이 끊어버려 구습에 물듦이 없어야 장차 공부에 진전이 있게 된다.